<휴민트>에
재현된 분단의 단면들

영화 속 인물 관계, 대립 구도, 공간 표상

설 명절을 앞둔 2월 11일에 개봉된 영화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열네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3월 현재 200만 명 내외의 관객 동원 수를 기록 중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로 감독 데뷔한 류승완은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 화려한 액션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 등으로 나름의 연출 세계를 구축해 왔는데, 그의 영화에서는 과거 또는 현재의 역사 및 시대상이 극 중 서사의 동인이 되곤 하였다. <휴민트>의 경우, 71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하고 대종상, 부일영화상, 청룡영화상 등에서 수상하여 작품성도 인정받은 <베를린>(2013)에 이어 남북한의 분단 상황이 반영된 작품이다. 영화는 분단의 현주소를 이야기 구조 및 장면 구성 기법 등을 통해 그려낸다. 이로 인해 인물 관계, 대립 구도, 공간 표상 등을 둘러싼 특징적 양상이 표출된다.

휴민트
(2026)

개봉

2026-02-11

감독

류승완

출연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휴민트 혹은 북한여성, 그리고 두 명의 요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휴민트(HUMINT)’는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의 합성어로 인간에 의한 정보 활동 및 그 정보원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작품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 내 북한 음식점 ‘아리랑’에서 근무하는 채선화(신세경 분)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평양음악대학 학생이던 그녀가 이국땅에서 식당 무대에 서고 주문을 받는 것을 넘어 몸을 파는 접대부 일까지 하게 된 것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던 중, 국가정보원의 조 과장(조인성 분)이 그녀에게 접근하여 두 모녀의 탈북을 지원한다는 합의 하에 현지의 마약 유통 및 인신매매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 분)에 대한 감시를 목적으로 파견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분)은 아리랑에서 옛 약혼녀인 채선화와 재회한다. 그리고 황치성의 표적이 된 후 모스크바로 팔려 갈 위기에서 그녀를 구해내려 한다. 이에, 영화는 채선화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현 정보원과 옛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존재성을 부각시킨다.

남북 대치에서 선악의 대결로

각기 남한과 북한의 대표적인 방첩 및 보안 기구인 국정원과 보위성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 과장과 박건은 힘을 합쳐 황치성 일당과 블라디보스토크의 마피아 조직을 응징하고 채선화를 비롯한 북한 여성들을 탈출시킨다. 그러면서 영화는 국가 체제와 이념의 대치 상황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에, ‘악의 축’으로 제시된, 부패하고 잔인무도한 북한 외교관과 러시아 마피아 집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상을 끝까지 지켜내는 두 인물의 활약상을 펼쳐낸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남성 위주의 다소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난투극과 총격전이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자막에 가려진 모호함과 추상성

액션, 첩보, 범죄물이 결합된 장르 영화의 속성을 짙게 띠어서인지 서브플롯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탄탄하다고는 보기 어려우나, <휴민트>는 일어날 법한 사건들의 배열과 병치를 통해 일정 부분 개연성을 확보해 간다. 특히, 자막의 형태로 화면 하단에 특정한 시공간을 표기하는 방식에 의해 그 효과가 증대된다. 이에 따라, 관객은 영화의 주요 시간적 배경이 2025년 2월 12일을 기준으로 얼마 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이며 조 과장이 동남아시아 우범 지역에서 탈출을 소망하며 휴민트로 활동하던 김수린(주보비 분)을 잃게 된 것이 5개월 전이고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채선화를 포섭한 것이 4개월 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간에 관한 정보 역시 자막으로 제공된다. 블라디보스토크 내에서도 북한 영사관, 아리랑 식당, 호텔 안 국정원 비밀 사무실과 박건의 숙소, 그리고 마지막 대 결투가 벌어지는 검문소와 경매장 등에 대한 장소 식별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명확하고 구체적인 표시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간은 하나같이 본래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영사관에서는 극악한 폭행과 고문이, 아리랑에서는 매춘 거래와 정보 활동이, 경매장에서는 마약 유통과 인신매매가 난무하는 식이다. 그 밖의 공간에 부여된 모호함과 추상성은 한층 더하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마하도르’라는 곳은 익히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북-러 국경 지대는 지명 자체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간간이 등장하는 국정원 청사 내부의 경우 공간 지각이 수월한 곳처럼 비추어지지 않는다. 이로써 영화는 변화무쌍하고 혼돈이 가득한 국제 정세와 불투명하고 지지부진한 남북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